사도행전 4:1-37 <세상 앞에서 담대할 수 있는 이유>
<문단나누기>
4:1-22 공의회 앞에서 담대하게 나아간 사도들
4:23-37 기도로 받은 성령충만으로 진짜 공동체가 되어 복음을 전하다.
<줄거리>
베드로와 요한이 백성들을 가르치던 중, 유대지도자로 인해 체포된다. (그 중 설교를 들은 사람들 중 5천명이나 믿음을 갖게 됨) 공의회에서 유대지도자들과 장로들은 무슨 자격으로 가르치냐고 심문하는데, 제자들은 담대하게 예수그리스도를 이야기하고, 그들은 제자들의 담대함에 놀라며,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놓아주었다.
이 소식을 들은 교회 공동체 사람들은 곧바로 하나님께 소리높여 기도한다. 이에 있던 곳이 흔들리고 성령충만해져서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였다. 그들은 한마음과 한 뜻으로 자신의 것을 나누며 공동생활을 이어갔다.
<말씀연구 및 묵상>
1. 4:1-22 공의회 앞에서 담대하게 나아간 사도들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 앞에서 그들의 인간적 대처는 잡아서 가두는 것과 전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일이었으나, 복음은 가두어지지 않았고 지속적으로 퍼져나갔다. 이에 제자들의 가르침을 받은 5천명이나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복음은 생명력이 있었고,널리 널리 퍼졌다.
너희가 무슨 능력으로, 또 누구의 이름으로 이런 일을 하느냐라는 질문은, "너네가 무슨 자격이냐?"라는 질문과 같다.
제자들은 교육도 제대로 받지 않은 . 대제사장들이 보기에는 그런 지식과 능력이 없어보이는데 어떻게 담대할 수 있을 지 의아하고 놀랍기도 했을 것 같다. 유대종교의 관점에서 봤을 때, 가르치는 행위는 대제사장의 권한이었고, 그들이 아는 지식으로는 성경이 부활을 가르친다고 믿지 않았기에, 또한 부활을 선포한다는 것 자체가 불쾌했을 것이다.
하지만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권위보다 더 높은 권위를 선포한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베드로는 불과 몇주 전, 예수님이 고소 당하셨을 때에 소심하게 위축되었었고 겁을 먹고 종들에게 변명을 늘어놓았었는데 지금은 아주 담대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담대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면, 성령충만한 상태였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싶다. 그리고 사람의 말을 듣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더 옳고,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그들은 이후 산헤드린 회의가 모였을 때, 사도들의 주장이 진실인가를 논의하지 않고 단지 '이것이 더 퍼지지 못하게' 할 방법만을 토론했다. 자기들의 위치를 지키는 것에만 급급한 것이다.
2. 4:23-37 기도로 받은 성령충만으로 진짜 공동체가 되어 복음을 전하다.
있었던 일에 대해 교회 공동체에 이야기했을 때, 첫번째 반응은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 높여 기도한 것'이다. 이는 선지자들이 예언했고 그들이 예상했던 핍박에 맞설 용기와 힘을 얻기 위한 기도였다. 그리고 이에 성령 충만으로 다시금 말씀을 담대히 전하게 된다.
그리고 공동생활을 이어가며 더욱 복음을 적극적으로 전파하게 된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은혜를 베푸셨다.
그들 중에는 부족한 것이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 부분을 보면, 진정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동체의 모습이 아닐까. 서로 나누고 함께하고... 그 속에서는 비교감도 우월감도 없고 서로의 존재에만 오직 집중하고 평등하지 않았을까?
=> 진실 앞에서도 자신들의 권위와 가진 것들이 중요했던 자들. 그들은 진리를 알지 못했다. 진리 앞에서도 까막눈이었다.
진리의 복음을 듣고도, 변화하지 않는다. 그들은 진리의 복음을 믿고 변화되어 담대한 사도들과 많은 비교가 된다.
제자들이 유대지도자들 앞에서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이 보고 경험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굳건한 믿음, 복음에 대한 확신, 그리고 함께하는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은 평범한 삶,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삶. 하루 먹고 사는 것을 걱정하는 삶을 살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응답하여 가치있게 쓰임받는다.
나에게 이런 굳건한 믿음, 확신이 있는가?
내가 보고 들은 기적은 이미 충분하다. 변화된 사람들과 삶. 그리고 이에 포함되는 나 자신의 삶도.
나는 그 앞에서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소극적으로, 나 또한 눈치를 보진 않았는지.
담대하지는 못한 것 같다. 사실 저런 핍박을 받지도 않기도 하지만.. 만약 핍박이 주어진다면 담대하지 못할 것만 같다.
굳건한 믿음이라는 표현을 하기가 어렵다. 연약한 믿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나의 상태를 직면하고,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성령충만을 위해서 기도하고 또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함께 마음과 재정을 나누는 삶을 지속적으로 살아가기를 힘써야겠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보고 기뻐하실 것이라 확신한다. 지금의 소중한 공동체도, 허락해주신 분은 하나님이심을 확신한다. 이 안에서 때로는 낙심할 때도 있고 마음이 상하기도 하지만, 그 또한 하나님께서 나를 성장시키고 연단시키기 위해 허락해주심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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