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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책 읽기

파친코 책 리뷰 ! 이민진 장편소설 드라마 원작소설

by 곰곰책방 2022.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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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리뷰를 드디어 해본다.

 

품절대란으로 책을 구하기가 참 어려웠던, 인기 절정의 장편 소설 파친코. 늘 도서관에는 대여 중이고, 예약자도 걸려있는 상태였다. 언제쯤 읽을 수 있을까 했는데... 구 버전이지만 다행히도 책을 접했다. 

 

 

 

지금은 문학사상 출판사 말고 인플루엔셜인가 다른 출판사에서 새로운 버전의 책을 내놔서, 인터넷 서점에서도 구입가능하다.

 

애플 TV에서 드라마도 만들어졌는데, 우선 원작을 책으로 본 후에 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드라마는 패스! 하고 책부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우선 1권만이라도 빨리 읽어보자 했는데, 끊기면 뒷 내용이 궁금해서 참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육퇴시간이랑 자투리 시간들마다 읽어버리니 3일만에 2권 완독했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첫 시작은 언청이에 절름발이 훈이와 양진이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사실 첫 부분은 크게 몰입이 되지는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읽어내려가며 훈이가 얼마나 충실하게 가정을 챙기는 따뜻한 아버지였는지, 양진은 무던하게 자신의 일을 잘 해내는 그런 내면이 강한 엄마임을 알 수 있었다.

 

훈이가 장애가 있어서 장애가 없는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했지만, 아이를 위해 많은 시도를 했다. 유산, 신생아가 병에 걸려 죽고 그러한 많은 이별이 있었음에도 온전하게 장애가 없는 '선자'를 낳았다.

 

선자는 아버지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선자도 부모님을 닮아 바르게,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지내왔지만 생선 중매상 고한수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예상치 못한 삶과 맞닥뜨리게 된다. 고한수는 유부남이었고 그의 아이를 임신한 선자는 그와 장밋빛 미래를 꿈꿀 수 없었다. 그가 자신을 속였음을 알게되자 그녀는 망설임없이 한수를 떠난다. 

 

고한수의 아이를 가진 몸으로 고국에서 살아가기엔 너무나도 매서운 길이었다. 그 현실과 마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백이삭 목사가 그녀에게 구원의 손을 뻗는다. 백이삭 목사는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진 선자를 받아들인다. 백이삭 목사와 결혼하며 그의 친형이 있는 오사카로 떠나게 된다. 고국을 떠나 타국살이를 하게 된 선자는 일본에서 재외교포의 인생을 온 몸으로 살아내게 된다.

 

 

(짧은 앞 부분 줄거리는 여기까지! 직접 읽어보시면 정말 빠져드는 이야기들이어서 많은 스포는 자제할 생각이다.)

 

 

 

기억에 남는 구절, 그리고 나의 생각들

 

1. 인생 그리고 고통

 

 

여자의 일생은 일이 끊이지 않는 고통스러운 삶이데이, 여자의 인생은 남편한테 달려있다. 좋은 남자를 만나면 근사한 삶을 살게 되고, 나쁜 남자를 만나면 저주받은 인생이 시작되는 거래이.

 

양진이 선자에게 한 말이다. 사실 여자의 일생을 고통스러운 삶이라고 표현했지만... 나는 우리 모두의 일생이 일이 끊이지 않는 고통스러운 삶이 아닐까 싶다. 여자의 인생이 남자에게 달려있나? 남자의 인생도 여자에게 달려있지 않은가. 물론 가장으로써 역할을 하고,, 그런 서로의 역할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결국 부부는 결혼을 하면 한 몸이 된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을 수 밖에 없는데, 우리의 인생에도 나쁜 여자를 만나서 저주받은 인생처럼 힘들어하는 남자들이 보이지 않나...

 

난 이 문장에서 여자의 일생으로만 한정지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의 인생에서나 각자의 고통과 힘듦이 있다. 그건 비교할 대상이 못된다. 누군가가 타인의 고통에 대해 너의 고통은 나보단 낫잖아 하고 비교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내가 경험하고, 주관적으로 느꼈을 때 그것이 고통이라면. 분명 고통이 맞다. 

 

여하튼 저 문장이 나온 이유는, 이 책에서 여자의 일생이 너무나 고통스럽게 나와있어서 인 것 같다.

선자의 삶과 경희의 삶을 보면 그렇다. 선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남편이 고문당해서 죽음을 맞이하고, 자녀가 자살을 하고.. 참 기구하기도 하다. 경희는 불임, 아픈 남편 간호 등등... 여자로써 아이를 가지고 싶지만 아질 수 없는 그 고통은 얼마나 클까.

 

그럼에도 그녀들은 이 고통에 묵묵히 살아낸다. 선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가족들을 보살피고 사랑한다. 경희는 성숙하게 조카들을 사랑해주고 보살펴준다. 질투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요셉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그가 화상을 입고 걸을 수 없어 침대에 누워있어도, 성격의 변화로 견디지 못하게 화를 내도 떠나지 않고 정성스레 간호한다.

 

이들은 이타적인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선한 사람들이었다. 믿고 있는 종교도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한다.

 

 

2. 비참하고도 잔인한 재일교포의 삶

 

운명을 예측할 수 없는 도박 같은 재일교포의 삶

 

작품해설에는 재일교포의 삶을 '운명을 예측할 수 없는 도박 같은 삶' 이라고 표현했는데, 이 문장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사실 운명을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아무도 없을 테지만.. 고국이 있고 고향에 마음 껏 가볼 수 있으며, 자신의 뿌리, 정체성이 흔들리는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 시대의 우리들이 생각하는 운명과, 그 당시 재일교포들이 생각하는 운명은 확연한 차이가 있을 것 같다.

 

그들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일본에서 천민과도 같은, 개돼지 같은 대우를 받았다. 또한 고국인 한국에서는 일본사람 취급을 받았다.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그들의 외로움과 고독을 우리는 다 이해할 수 없다. 그 삶을 살아본 사람이 아니라면 쉽사리 이해한다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열심히 살면 변화될 수 있을 것이다. 부지런히 살아서 부자가 되면 미래를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믿으며 비참한 현실을 견뎌온 그들에게, 편견의 벽은 너무나 거대하고 두꺼웠다. 허물 수 없었던 무시무시한 벽이었다.

경제력을 갖춰도, 외국인 학교에 가고, 좋은 교육을 받아도, 여전히 그들은 조선인이기때문에 대우를 받지 못했고 차별 받아야만 했다. 

 

원하지 않았던 낙인, 태어날 때 부터 거부할 수 없는 낙인은 너무나도 잔인했다. 주인공들은 각자 다르게 그 비참한 삶에 대해 저항하는데, 그 중에서도 자신을 저주받은 피라고 표현하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던 노아의 마지막이 너무나 가슴아팠다. 아버지 백이삭이 끝까지 살아있었다면 노아의 인생은 조금은 달라졌을까? 노아는 아버지 이삭이 투옥되면서 그 빈자리로 인해 큰아버지 요셉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요셉은 자신만의 틀이 강한 사람인 것 같은데 알게모르게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일본인 되고 싶다는 은밀한 소망을 가졌던 노아는 아무리 노력해도 일본인이 될 수 없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비관하고 혼란스러워하며 삶을 끝맺은 그의 죽음이 충격적이었다.

 

 

3. 이타적인 사랑

 

 

어쩌면 제 인생에 큰 의미가 될 수도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 소수의 사람들에게요. 어쩌면 제가 그 어린 여자와 아이를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르고요. 또 그들에게 도움을 받는 것일지도 모르죠 저에게 가족이 생기는 것이니까요. 목사님이 어떻게 보시든 그건 큰 축복이 될겁니다.

제 인생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잘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죠. 그렇지 않나요? 

 

이 파친코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인물은 백이삭 목사이다. 그는 굳이 선자와 결혼하지 않고도 잘 살아갈 수 있었다. 물론 몸이 약하고 아프긴 했지만, 그의 외모와 가진 능력은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진 여자와 맺어지지 않고도 더 멋진 인생을 살아갈수도 있지 않았을까싶다. 

하지만 그는 양진으로부터 선자의 사연을 듣고, 호세아 말씀 구절을 떠올리며 결단한다. 타인이 보기에는 바보같고 이해되지 않는 선택을 말이다. 

그럼에도 그는 선자를 구제했다는 자의식에 빠지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고 하며, 축복이라고 표현한다. 어떻게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살펴보면, '제 인생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라는 그의 말에서 엿볼 수 있는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안정과 행복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았다. 주가 허락해주신 삶은 나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늘 인생을 살아가며 기억해왔던 것 같다. 자신을 내려놓고 주의 뜻을 먼저 구했던 사람이었다.

그의 이러한 결단을 보며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이 말이 떠올랐다. 죄와 사람을 구별해서 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나에게는)

 

그는 진심으로 노아에게 "사랑하는 아들아 넌 내 축복이야." 라고 이야기해준다. 자신의 친자식이 아닌 아이를 진심으로 자녀로 생각한 것이다.

 

백이삭 목사가 옥중에서 많은 고문을 받아 온 몸이 상한 채, 마침내 집을 찾아왔을 때.. 그 부분을 읽으며 너무나 슬펐다.

끝까지 자신보다도 남겨진 가족을 걱정한 사람. 이렇게 이타적인 사랑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랑에 대해 다시금 많은 생각을 해본다.

 

 

 

 

 


 

읽고나서도 여운이 남는 파친코.

2권을 읽을 때 쯤에서야, 왜 이 책의 제목이 파친코인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결국 그 파친코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고자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조국을 잃고, 찾고 허물어진 것들을 다시 세워가고... 그러한 역사로 인해 상처입고 피해입은 자들, 그들의 고통을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느껴보았다. 원하지 않았던 삶. 그 삶을 꾸역꾸역 위태롭게 살아낸 그들이 존경스럽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그 고통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그들에게 깊은 위로가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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